충청,경상도

(경남 창녕) 1,500여년 전에 건립된 천년고찰 관룡사

강릉꽁지 2012. 9. 28. 09:32

안녕 하세요.

대관령꽁지 입니다.


창녕의 화왕산군립공원에 자리한 신라시대 천년고찰 관룡사

통일신라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석탑 그리고 석불여래좌상을 볼수가 있는 사찰입니다.


병풍같이 쳐진 바위봉을 비롯해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는 천년고찰 관룡사 구경을 같이 하시죠....


전국에 자리한 사찰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곳 관룡사 아름답고 조용한 사찰이고 특히나 화재를 대비한 모습에

천년의 고찰을 잘 보존하여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는 사찰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관룡사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중의 하나이였으며,

원효대사가 제자 1,000여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화한 도량이였으며,

이 절에느 국가에서 지정한 4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관룡사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으니,그중 하나는 산라 진평왕 5년(583년)에 증법국사가 초창하였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200여년 전 신라 홀해왕 40년(349년)에 약사전이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으니 

어느 경우에도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건립된 천년고찰임에는 틀림없다.


관룡사 이름의 유래는 원효대사께서 제자 송파와 함께 칠성 100일기도를 마친 날,

화왕산 정상 월영삼지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여 볼관,용용자를 써서 관룡사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그 뒤산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 사찰은 임진왜란 당시 왜구의 방화로 전체 사찰이 소실 되었으나 

오직 약사전만은 화재를 피했으며,이는 오직 부처님의 영험한 힘으로 화마를 물리쳤다고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용선대 부처님은 한가지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하여 소원성취 기도처로,

약사여래불 부처님은 질병을 낫게 해준다고 하여 질병극복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룡사 원음각 


이 건물은 1634년(인조12)에 처음 건립된 사원의 누각건물이다.


건물의 상량문에 의하면 1763년(영조39)에 크게 중건했다고 하는데

 1704년(숙종30) 대홍수 때의 산사태로 훼손된 것을 고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이 누각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에 들보 5량으로 조성된 이익공계 건물이다.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고,

대웅전 앞마당과 높이가 같아 마당에서 출입하기가 용이하다.


그 용도는 불구를 보관하거나 설법 장소로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누각 아래 중앙칸을 통해 대웅전 마당에 출입 하였으나,

지금은 지붕 아래 기둥 사이를 벽으로 막아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쓰고 있다.





관룡사 약사전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의 맞배기와집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으며 그 사이의 포벽에도 구조물이 생략되어 있다.


창방의 끝을 그대로 첨차로 만들고 있는데 

이는 주심포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수법이다.


그러나 내부의 첨차는 다포계 건물에서 처럼 원호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두 가지 계통의 첨차를 사용한 예는 1404년경의 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과

 1473년 중건의 도갑사해탈문(국보 제50호)이 있어 이 건물릐 건립 시기도 상한을 15세기로 볼수 있을 것이다.


이 건물은 지붕이 기둥 간격에 비하여 두 배 가까이 길어 

연 면적은 좁으나 전체적인 모습은 균형잡힌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


관룡사 약사전 앞에 위치한 이 삼층석탑은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아래 받침대의 네 면에는 코끼리의 두 눈을 형상화 한 안상을 각각 두 개씩 조각 하였는데,

이는 석탑의 장식적 기능을 강조했던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석탑 표현 양식이다.


또한 사각형의 바탕 돌 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는데,

이와같이 자연 암반 등을 그대로 이용하여 석탑의 가장 밑바탕을 마련하는 것 역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위 받침 각 면의 모서리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기고,

중앙에는 받침기둥을 표현함으로써,목조 건축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몸체 부분은 받침대에 비해 파손이 심한 편인데,

1층 지붕돌의 동쪽 면이 많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1층의 몸체돌과 그 위층 몸체의 크기가 너무 현격한 차이를 보여 체감율과 조화미를 잃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주로 표현되던 5단의 지붕돌받침은 3단으로 줄어들었고,

지붕돌 역시 두툼하여 처마 끝의 치켜 올림이 약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신라형 석탑의 변형과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크기가 축소되고 각 부분의 기법이 간략화 된 것으로 보아.이 석탑은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약사전에 모셔진 고려시대 불상이다.


머리 위의 둥근 육계에는 가르침을 상징하는 반달 구슬의 계주가 표현되어.

고려시대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법의의 겹쳐진 부분은 선각 으로만 표현되어,

형식화되어 가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연꽃잎을 거북 등처럼 새긴 상좌,팔각형의 중좌,

두 겹의 연꽃잎을 깐 사각형의 하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의 크기에 비해 높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에 이 지역의 석공이 

8세기의 신라불상을 모델로 만들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팔각형의 중좌에는 4행의 조상기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느 772년(혜공왕8)에 대좌의 조성이 이루어졌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문의 발견으로 인해 현재 남아 있는 대좌와 불상의 조성 시기는 각각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사찰 내부에는 각각의 건물앞에 사진과 같이 소화전이 비취가 되어있는데

화재의 대비를 철저히한 관룡사 임을 알수가 있다.















2012강릉세계무형문화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