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

#서울여행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중 가장긴 다리..살곶이다리

강릉꽁지 2013. 8. 14. 13:36

서울 갈때는 언제나 대중 교통을 이용을 하는데

이번 나들이 에는 자동차로 올라가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서울의 교통체증 이고 또다른 이유는 주차문제 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사정이 있어

생각한것이 살곶이 공원 주차장 이였다.

 

이곳은 주차비도 저렴하고 지하철이 가까워 편리한 곳이다.

 

주차를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하던중

살곶이 다리가 보여 몇장의 사진을 담고 한양대역으로 향한다.

 

 

 

 

 

살곶이 공원은 꽁지가 서울살때

조기축구를 했는데 이곳 축구장에서 아침을 시작하던 곳이다.

 

그때는 항시 그 자리에 있구나 생각하던 살곶이 다리가

오늘은 새롭게 보이는것은 왜일까.

 

포스팅을 하면서

살곶이 다리를 검색하고 찾아보니

우리의 문화재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것을

이제야 알수가 있었다.

 

블로거로 활동을 하면서 배우는것도 많지만

모든것이 글 소재로 보이니 이것또한 직업병 이라고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나치기 쉬운 우리의 문화재

새삼 잘 보존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곶교(서울 살곶이 다리)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통로로 사용하던 다리로 살곶이 다리라고도 한다.이 다리는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에 세종 2년(1420) 5월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태종이 죽자 왕의 행차가 거의 없어 완성되 못하였다.그 후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백성들 때문에 다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성종 6년(1475)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성종 14년(1483)에 완성했다.마치 평평한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하여 "제반교"라고도 불렀다.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모두 64개의 돌기둥을 사용하여 만들었다.동기둥의 모양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고안되었다.1920년대 서울에 내린 집중 호우로 다리의 일부가 떠내려 가서 70년대에 다시 고쳐 지었으나,다리의 오른쪽 부분에 콘크리트를 잇대어 복원함으로써 원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전곶교 → 서울 살곳이 다리)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년 7월 28일 고시)<출처 다음>

 

 

 

 

 

 

 

 

 

 

 

 

 

 

 

 

안내문

 

서울 살곶이 다리는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된 석교로 매우 가치있는 유형문화재 입니다.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되어야하므로 다리 위에는 안전시설물을 설치 할 수 없으며 차량 및 오토바이는 통행을 제한하고 있습니다.특히,자전거 및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이용해 통행하실 때에는 내려서 천천히 보행하시기 바라며,이용자들께서는 안전사고 예방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살곶이다리의 상판석 및 귀틀석 원형

 

이 석재는 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인 살곶이다리의 상판석 및 귀틀석 원형으로서

2002년 5월 파손된 부분을 교체하고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이곳에 전시하였습니다.

상판석과 귀틀석의 모양은 종량과 횡량으로 걸 수 있도록 다듬어져 있으며 각 부의 석재가

장대하고 질박하여 600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까지 호쾌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전곶교

 

지정번호:사적 제160호

시대:1483년(성종 14)

소재지: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58번지

 

전곶교는 조선시대 서울과 한반도의 동남부를 잇는 주요 교통로에 세워진 다리다.1420년(세종 2) 다리를 짓기 시작하여 1483녕(성종 14)에 완공하였다.전곶교는 살곶이다리를 한자로 바꾼 것인데 살곳이라는 지명은 상왕인 태조가 태종과 갈등을 겪을 때,태조가 겨눈 화살이 태종에 있던 그늘막의 기둥에 꽃혔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교각은 4개씩 열을 이루고 있다.그중 안쪽 2개의 기둥 높이를 약간 낮춰서 다리의 무게중심을 중앙에 두었다.교각의 위쪽은 가로대를 하나 놓고,그 위에 긴 석재로 틀을 짜고 사이에 판석을 깔아서 마치 마룻바닥과 같이 평평한 바닥을 만들었다.이 때문에 평평한 다리라는 뜻으로 제반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전곶교의 길이는 76cm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 중에서 가장 길고,일체의 난간이나 장식을 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1920년의 홍수로 다리의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이를 1972년에 보수하였다.이 때 과거보다 하천의 폭이 넓어져서 동쪽 끝에 콘크리트 다리를 이어 붙였다.<출처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