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경상도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보리암 일출 (보물섬 남해여행)

강릉꽁지 2013. 10. 11. 10:41

 

38경의 절경을 가지고 있는 남해 금산은 소금강,남해금강이라고 불리는 삼남의 최고의 명산이다.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 이라고 불렀는데,조선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왕조를 개국하여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산 전체에 비단을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는 낙산사 홍련암,강화도 보문사 와 이곳 금산의 보리암인데 그동안 강화도 보문사는 아니고 여수 향일암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보시는 분들중 틀린것을 지적해 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관음성지는"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리암은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과 같이 갔어도 3대가 덕을 쌓은 분이 없었는지 볼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컷다.


그래도 구름에 가려진 일출이라도 한 장 올려본다.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 

해수관음상이 상주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지은 모습이 웅장하고 멋지다.


 


삼층석탑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원효대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삼층석탑앞에 나침반을 오려놓으면 북쪽을 가르쳐야할 바늘이 남쪽을 가르킨다고 한다.백두대간의 끝자락이며.태평양의 기운을 받아서 일지는 모르지만 자기난리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기도량으로 유명한 이곳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에게 소원을 빌면 하나의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하는데 자신을 위하는 소원이 아니고 남을 위하는 소원이래야 들어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어디를 가던지 차분하지 못한 성격에 소원을 비는것을 잊고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아기동자들 모습이 참 귀여워 보이며,자신의 몸에 지니고 다녔을 염주를 동자에게 주면서 가정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의 행동을 생각해본다.누구나 행복을 누릴수 있지만 지키는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보리암에서 같이한 모든 사람들,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행복하다.소통을 좋아하고,인연을 좋아하고,세상을 살면서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나 자신을 다짐해본다.


 

 

어떤 종교의 모든 성지를 좋아해 자주 다닌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숙해지는 마음은 어쩔수없다.오늘 이곳 보리암에서도 왜인지 뒷꿈치를 들고 걸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보리암에는  두가지 설화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드린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같이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는 설화이다.장유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인데 중인고의 아유타국의 공주가 허씨성을 가지게 돤 것은 아유타국이 멸망하고 인도와 인접해 있는 중국으로 옮겨와 일을 때,중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공주의 삼촌인 장유선사가 인도의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라 전해진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사이에서 열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 왕자를 장유선사가 데리고 출가를 했다는것이다.일곱 왕자를 데리고 출가한 장유선사가 거쳐간 곳은 영남일대에 많이 있는데 김해의 장유암은 그 확실한 사적지이고,가야산과 지리산의 철 부처가 모두 장유선사의 유적으로 전해진다.그런데 장유선사가 처음 찾은곳이 가락국이 자리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금산 보리암 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망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원효대사 창설이다.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상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온 산이 마치 발광하듯 빛이 났다고 한다.초옥을 하던 원효대사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으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두 가지의 설을 가지고 있다.

보리암에는 극락전,보광전,범종각 등의 전각이 있는데 그 중 보광전은 "깨달음의 빛을 널리 하여 삼독과 칠난에서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의 서원이 담긴 곳으로 보광전 맞은편의 해수관음상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할 때는 찬란한 서광이 비쳤다고 한다.(출처 다음)

 

 

 

바보가 되어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 사람이 나온다.

 

업장을 녹이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설혹 자기가 잘 했가고 하더라도

"예,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을 한 번 하면 그때가 바로 업장이 녹아질 때다.

 

잘못했다고 나무라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가슴에 꽉 차 있으면

업장이 녹아질 수가 없다.

 

그만 다 비우고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한 마디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절을 하는 그때가

다겁다생에 지은 죄악이 막 녹아질 때다.

 

이유없는 참회는 바보의 행위일지 모르지만

바보가 될 때 모든 업장은 해탈과 자유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아래글 "향성각" 이라는 보리암 종무소 현판은 경봉스님의 글이다.그래서 찾아본 스님의 글 중에서 좋은 글이 있어서 이곳에 옮겨본다.한줄 한 줄 되새기며 살아가도록 노력해 보련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새벽부터 서둘러 올라 비록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일출을 보진 못하였지만 보고 느끼는 것이 많았던 산행 이였고 아직은 남아있는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돌파구를 찾은것 같아서 의미있는 시간을 했다.살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가지는 욕심 이제는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경봉스님 말씀같이 바보가 되어 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