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도보여행 강릉 누정길/길위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강릉꽁지 2017. 12. 4. 07:00






강릉바우길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바우길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강릉누정길이 있다.

강릉 누정길은 경포호를 주변으로 자리한 정자를 찾아서 떠나는 길이다.

경포호는 지방기념물 제 2호로 석호이며,

옛날에는 15km이상 이였다고 한다.

 

경포호 주변에는 소나무숲이 우거졌고,정자가 많이 있다.

현재 경포호는 4.35km이며,

주변에 가시연습지를 조성하여 가시연,수달,철새와함께하는

경포호를 조성하였다.

 

경포호 주변에 자리한 정자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천하절경인 경포대,활래정,해운정,경호정,상영정,금란정,방해정,

월파정,호해정,석란정,창랑정 취영정,환선정 13개의 정자를 찾아보았다.

 

옛날에는 16개의 정자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 소개한 정자외에 천하정,매학정,청연정 등이 있었다고 한다.







경포대

 

강릉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포호를 끼고 있어 천하절경이라고 한다.

정자에는 "제일강산"이란 글씨가 있는데

이 글씨는 평양 대동강변 영광정에 써진 (중국 산동성 대묘의 비석)

글씨를 모본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경포대에는 달이 다섯개가 뜬다.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호수에 비친 달,

술잔에 담긴 달,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

이렇게 다섯개가 보인다고 전해진다.







활래정

 

조선후기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인 선교장에 딸린 정자이다.

이곳은 창경궁에 있는 부용정을 본 따서 만든 정자로

연못에 네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선교장 주변을 배나들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 활래정까지 나룻배가 드나들었다고 전해진다.







해운정

 

보물 제 183호이며,운정동 경포호 서쪽 산기슭 줄기에 위치한 별당으로

조선시대 상류계층의 주택 별장건물이다.

선교장에서 경포호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초당두부 마을 400년된 가옥옆에 있다.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연꽃이 피는 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경호정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딴 정자로

경포호수 북쪽(저동)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강릉의 주민들이 계를 결성하여 1906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기둥의 단청과 누각의 그림이 은은하여

우거진 송림 사이로 비치니 그윽하고 아늑한 자태는 경포대보다 좋다고 한다.







상영정

 

조선조 고종 23(1886)에 강릉의 고을 선비 16명으로

계를 조직한 상영계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상영은 "소뿔로 만든 잔으로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다." 라는 뜻이다.

참고로 소뿔로 만든 잔은 상,

나무로 만든 잔은 배,

쇠로 만든 잔은 작 이라고 한다.







금란정

 

금란반월계원들이 조선조 세조 12(1466)에 생긴 계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금란은 "두 친구가 합심하면 그 예리함이 금을 자를 수 있고,

향기는 난처럼 아름답다"라는 시경에서 따왔다고 한다.

금난반월계는 수양대군이 정권찬탈의 야욕을 품고

계유정난을 일으킨 다음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친동생인 안평대군,금성대군,중신인 김종서,황보인,사육신 등을 무참히 죽이고

왕위를 올랐다.

이러한 행위는 군신간의 윤리와 가족간의 윤리를 동일시하던

조선조의 유교이념에 따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를 할 수 없었지만

심정적으로 반대한 강릉지역 출신의 지식인 15명이 낙향하여

고향에서 생활하면서 스승(수헌 최응현)을 모시고 만든계이다.







방해정

 

금난정에서 바닷가쪽으로 1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청마루에서 낚시를 하며 놀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경포호 주변의 정자는 대부분 계원들이 지었으나

이곳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옛날에는 집 앞까지 호수여서 배를 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방해정 앞에는 홍장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고려 말 강원관찰사로 관동지방을 순행하던 박신이

강릉의 관기인 홍장과 안개 자욱한 경포호에서 애뜻한 사랑을 했다고 전해진다.







월파정

 

경포호 안 새바위에 있는 정자로

기해년에 태어난 동갑계원 28명이 환갑을 기념하며 건립하였다고 한다.

바위 위에 기둥을 세우고,지붕만 올렸으며,

바위에는 "조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효종 때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와 써 놓았다고 한다.







호해정

 

다른 정자보다는 경포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이 특징이다.

경포 현대아파트뒤 작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 여름이면 배롱나무 붉은 꽃이 피여 절경을 볼 수 있다.

당시는 정자 앞까지 호수였다고 한다.

이곳은 김몽호의 후손들이 순조 43(1834)에 소유주였던

신씨 집안으로부터 인수하여 관리를 해오다

1913년 옥청종 영당에 봉안되었던 김몽호의 영정을 이곳으로 모셔와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다례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석란정

 

경포해변과 경포호 사이에 있다.

갑인생 동갑계원 21인이 1956년에 건립하였으며,

돌과 같이 단단하고 난과 같이 청아함을 계의로 상징하여

"석란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곳은 주변에 송림이 우거져 솔향 가득한 정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화재로 소방관 두명의 목숨과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창랑정

 

석란정 옆에 있다.

임자생 동갑계인 영춘계,19동경계,임자계 등

세 계원이 모여서 1962년에 건립하였다.








취영정

 

고종 29(1892)38인의 취영계 계원들에 의해 건립된 정자로

경포호 동쪽(강문동)에 있는 죽도봉 밑에 자리하고 있다.
사근암과 무릉암의 반석에 계원들의 이름을 각자 하였다.

정자의 이름은 사취어정의 뜻에서 명명하였으며

계수 정홍기가 정자의 기문을 이었으며

추장 서상우가 주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취영정에는 "경싱 617일 신묘 자시 입주 동월신시상량"이라 쓴

상량문이 기록되어 있다.

정자 앞면에는 "취영정"의 전자체 현판과

옆면에는 동곡이 쓴 해서체 "취영정"현판이 걸려있다.







환선정

 

경포호수 동쪽 기슭 모안이굼(포남동)에 있었으며,

사예 권칭이 지은 정자이다.

둘레에 화초를 많이 심고 그 공간에서 태평하고 

한가롭게 노닐었다.

부사 정경세가 지은 시에 이르기를

"그림 같은 환선정이 구름밖에 솟았으니 봉래산 신선들을

불러도 되겠구나.밤늦도록 술마시고 촛불을 물리고 나니,

휘영청 밝은 달이 호수에 넘실대네" 라 하였다.

 

예전에는 환선정 앞까지 경포호였고 피리를 불면 한송정까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경포 8경 중 하나인 "환선취적"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경포호를 주변으로 13개의 정자를 찾아서 떠나는 도보여행!

인문학과 함께하는 뜻깊은 여행이다.

강릉에서는 계를 몇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활동성을 판단 한다고 하듯이 현재까지도

강릉에는 많은 사람들이 계를 이어오고 있다.

강릉 사람들은 3명만 모이면 계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끝으로 강릉은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 좋은 여행지로

문향,예향의 도시이다.

길위에서 배우는 인문학

강릉 누정길을 걸으며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