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경상도

가톨릭 문화가 살아 숨쉬는 대구시....

강릉꽁지 2011. 2. 19. 07:11

대구시를 구경을 하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지요.

가톨릭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티투어의 코스의 이곳을 구경을 합니다.

 

더욱더 놀란것은 중학교시절 배운 가곡 "동무생각" 의 무대인

청라언덕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사실과 알면 알수록 즐거운 대구를 안와본 사람은

후회를 하실듯 합니다.

 

그래서 꽁지가 열심히 다녀봅니다.

자 그럼 출발을 하야죠...ㅎㅎ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의 가곡 '동무생각'의 가사입니다.

학창시절 배운 가곡으로 기억되는 유명한 곡이지요.

그러나 이 가곡의 무대인 청라(靑羅)[각주:1]언덕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소개와 2008년부터 시작된 대구 도심 문화탐방

골목투어로 인해 알려지기 전까지는 동산병원 남쪽 언덕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동무생각'은 경남 마산 출신의 시조시인이었던 이은상 선생과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경남 창원의 한 한교에서 같이 교사로 재직하다가 이은상 시인이 박태준 선생의 학창시절 연애사를 듣고 즉석해서 가사를 만들었던 곡으로

계성학원 출신의 박태준 선생은 학창시절 당시 신명여학교(현 신명고) 여학생을 사모하던 기억을 곡으로 만든 것입니다.

 

동무생각은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봄의 서정을 실어 우리 중학생들이 필수로 배우는 가곡으로 남았있죠.

봄 꽃이 피어나는 학교 교정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가곡입니다.

 

(출처 : http://cusee.net/2462647 )

 

 

 

대구 중구 동산동 194번지 동산병원에 있는 의료선교박물관은 1906~1910년에 건축된 선교사의 사택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구요.

스위츠 주택(선교박물관), 챔니스 주택(의료박물관). 블레어 주택(교육역사박물관)은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24~26호로 각각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답니다.

 

이 건물은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데다 주변의 유서깊은 자연 환경과 잘 어우러져 그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인정받았서.

 의료선교박물관은 대구시 시티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해마다 5천~8천 여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웨딩 촬영 명소로도 알려져 있지요.

또 독특한 건축 양식과 주변의 고목을 비롯한 여러종류의 식물들은 학생들의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와 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 자산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단체입니다.

 

(출처 : www.daegucitytour.com )

 

 

 

 

선교사들의 묘역인 은혜정원 입니다.

계산동 성당


사적 제290호. 1918년의 증축으로 완성을 본 이 건물은 도심의 평지에

건축된 연건평 3백 평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전주 전동 성당과 쌍벽을 이룬다고 합니다.

 

1899년 건축된 목조십자형 기와집 성당이 1900년 화재로 불타버리자,

그 자리에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로베르(金保祿) 신부가 설계하고 프랑스·중국 등지에서

건축 기술자와 도목수·석공 등 30여 명을 초빙, 2년 여 만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건물의 평면은 라틴 십자가 삼랑식(三廊式)으로 신자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입면은 서쪽 정면에 종탑(鐘塔) 기능의 2개의 8각형 첨탑을 세워 건축물의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지요.

창문은 부벽(扶壁) 구조에 아치로 설계하였으며, 정면 현관과 측랑(側廊) 위쪽에 있는 꽃무늬 창은 한국의 건축 양식상 획기적인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rtpeace)

 

 

 

                                                        남.북을 합쳐서 세번째인 고딕양식의 건축물 이라고 합니다.

 

 

 

이상화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1901~43)가 숨지기 직전 4년을 살았던 집 입니다.


시인이 죽은 뒤 이 집은 한동안 요정으로 쓰였고,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했는데

이때 대구 시민들은 50만 명이 서명한 탄원서와 모금액 8600만원을 들고 대구시청을 찾아가서

2006년 이 일대를 구입한 건설회사가 상화 고택을 대구시에 기증해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opentory.joins.com/index.php/Portal:Main)

 

 

서상돈(徐相敦 또는 徐相燉, 1851년 - 1913년)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 공무원입니다.

대구에서 지물(紙物)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檢稅官)이 되어 정부의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고

1907년에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金光濟)와 함께

대구에서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회를 조직하고 국채보상운동을 벌였읍니다.


(출처 다음)

 

 

 

보도블록에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오는가 시 글귀가 조명을 넣어서 적혀 있는것이 인상적 입니다.

 

타일로 제작을 한 태극기 입니다.

 

타일로 제작을한 시인 이상화와 서상돈 입니다.

 

 

대구 제일교회의 모습입니다.

 

 

대구에도 보신각이 있다고 하는데요.

서울만 있는줄 알았어요..ㅎㅎ

 

오늘도 대구 구경을 하시느라 고생을 하셨읍니다.

저녁시간도 되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대구의 먹거리 두번째인 막창을 묵으러 갑니다.